지난 주말에는 예전부터 꼭 보겠다고 마음먹었던 체르노빌을 봤다.평소 체르노빌 방사능 유출 사건에 관심이 많아서 인터넷이든 책이든 이것저것 많이 알아봤다.미드 체르노빌이 정말 잘 만들어졌다고 꼭 봐달라고 추천을 받았지만 미루다가 드디어 토요일 새벽 왓챠에서 완주했다.드라마의 시작.레가소프가 그날의 진실을 여러 테이프에 녹음하고 공산당의 검은 손을 피해 테이프를 숨긴 뒤 자살을 한다.내내 어두웠던 화면, 색감과 강렬하고 무게감 있는 오프닝 덕분에 몰입도가 높았다.죽음의 다리아름다운 장면이지만 동시에 가장 무섭고 가슴 아픈 장면.1986년 4월 26일 원자력발전소에서 폭발사고가 난 직후 방사능 빛인 푸른 빛 기둥을 구경하기 위해 철교 위에 모인 사람들.폭발과 함께 날아간 수많은 방사능 낙진을 그대로 뒤집어썼지만 이들은 모두 곧 사망했다고 한다.대다수는 젊은 부부와 아이들이었고 갓 태어난 아기까지 있었다.그리고 가장 잊을 수 없는 셰르비나의 표정.처음엔 도대체 뭐가 그리 쉽고 아무렇지도 않은지 답답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셸비나의 표정에서 답답함과 절망만 비친다.아마 드라마상에서 인상이 가장 많이 바뀐 인물이 아닐까 싶다.울리야나 호믹은 가장 이상적이고 정의로운 인물이다.체르노빌에서 400km나 떨어진 벨라루스 민스크 핵에너지연구소의 과학자이자 그날의 진실을 알기 위해 체르노빌 방사능 유출 피해자들을 찾아가 그날의 일을 일일이 인터뷰하고 기록한다.마침내 진실을 마주했을 때 그 무엇과도 타협하지 말고 레가소프에게 모든 사실을 세상에 밝혀야 한다고 주장한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이 정의로운 인물은 체르노빌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 과학자들을 기리기 위해 만든 상징적 가상의 인물이라고 한다.첫 번째 폭발사건 직후 원자력발전소로 치솟은 불길을 제압하기 위해 체르노빌을 포함한 주변 지역까지 소방관들이 소집되는데 그 소방관 중 한 명이 바실리, 그의 동료는 바닥에 나뒹굴던 흑연 덩어리를 장갑 낀 손으로 만졌는데 손바닥이 녹을 정도의 화상을 입었고 바실리는 방사능 불길이 치솟고 있는 원전 4호기 지붕까지 불을 끄러 올라가 엄청난 양의 방사능에 피폭돼 피부가 녹아내리는 끔찍한 고통 속에서 죽어갔다.그리고 그의 아내 류드밀라 이야기.진짜 류드밀라이그나텐코배경이나 사건의 고증만 잘하는 게 아니라 실제 인물과 배역이 많이 닮았다.그녀는 남편이 피폭돼 죽어가는 모습을 끝까지 곁에서 지켜봤고, 살아있는 방사능 덩어리가 된 바실리의 곁에 있으면서 그녀도 피폭됐는데, 당시 임신 상태였던 류드밀라의 뱃속에 있던 아기가 그 방사능을 모두 흡수해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숨졌고, 그녀는 평생 불임 판정을 받았지만 이후 아들을 낳고 잘 살고 있다고 한다.드라마를 보는 동안 눈 앞에 있다면 뒤통수를 때리고 싶은 인간이 몇 명 있는데, 그중 가장 얄미운 놈. (물론 실제 인물이) 재주는 없는데 고집과 아집의 불통 인간이 완장을 차면 그 집단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명확히 보여준다.실존 인물은 1995년 방사능 관련 병으로 사망했다고 하는데, 그 때문에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희생하고 고통스럽게 죽어간 것을 생각하면 그 아이는 진작에 더 고통 속에서 뒤쳐졌어야 했다고 생각한다.처음에는 편당 1시간 남짓, 5편.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담았을지 궁금했지만, 사건의 진실과 과정을 아주 탄탄하게 그려내며 일일이 나열하기 힘든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단 5편 안에 가득 차 있다.누군가의 가족이고, 연인이고, 부모였을 사람들의 이야기.현실은 몇백배, 몇천배의 이야기가 있을것이다..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순전히 제 개인적인 관심으로 이미 많이 찾아본 체르노빌 방사능 폭발 사고에 관한 익숙한 이야기였는데, 워낙 사실적이고 깊이 있고 잘 만들어진 드라마였기 때문에 드라마를 본 후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만나고 나서 계속 기분이 우울해진다는 말을 누군가 했는데, 끝까지 보니 우울하기보다 뿌듯하고 답답했다.-거짓된 대가는 무엇입니까-끝까지 진실을 숨기고 축소하고 은폐하려 했던 국가. 그럼에도 진실을 밝히려고 노력한 사람들이 있었고, 어떻게든 2차, 3차 사고를 막으려고 목숨 바쳐 노력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과정은 결코 희망적이지 않았다.한 칼럼에서 이 드라마의 유일한 단점은 실화다. 고 했는데 백 번이나 그렇다.왜 이런 참혹하고 비극적인 이야기가 실화여야 했을까.오늘은 체르노빌 방사능 폭발 사건 35주년이 되는 날이다.1986년 체르노빌 사고 당시 한국은 그해 열리는 아시안게임 홍보를 위해 체르노빌 사고에 대해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고, 이후 방사능 낙진이 한국에 발견되면서 이 사고를 알게 된 사람이 많았다.아마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 사고로 알게 된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인간을 향한 재앙은 인간 스스로가 만든다는 말에 동의하며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 사고에 관심이 있다면 이 드라마를 추천한다.